지방 소멸 위기

지방 소멸 시대, 농촌 공동체는 왜 청년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blogfic 2025. 6. 28. 09:02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수많은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청년 정착 지원금, 귀농 창업 보조, 농촌 주택 공급,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등
형식상으로는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들이 농촌 곳곳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청년들이 정착에 실패하고 지역을 떠나는 현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지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농촌 공동체가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늘고 있습니다.
정책은 행정이 만들지만, 실제 삶의 공간은 사람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정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과의 상호작용과 수용성, 즉 ‘문화적 토양’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 글에서는 농촌 공동체가 청년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구체적인 이유를 문화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정착 실패의 구조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겠습니다.

 

지방 소멸 시대, 농촌에 청년이 정착하게 만들려면

 

닫힌 공동체 구조 – ‘누구든 환영’이 아닌 ‘우리만의 방식’

 

농촌은 오랫동안 혈연과 지연 중심의 폐쇄적 공동체 구조를 유지해왔습니다.
마을 단위의 의사결정은 여전히 특정 연령대, 특정 가문, 특정 관행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외부에서 온 청년은 ‘일시적인 방문자’ 혹은 ‘감시 대상’으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마을 회의에 참여할 수 없는 것부터 시작해,
경작지를 빌리는 일, 공동 작업에 참여하는 일, 지역 행사에 역할을 맡는 일조차 제한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외지인에게 땅을 팔지 않는 분위기,
‘그냥 잠깐 있다 갈 사람’이라는 인식,
심지어 관광객처럼 대하는 태도까지 확인됩니다.
청년 입장에서는 ‘이 지역에서 나는 이방인’이라는 감정이 축적되며
‘여긴 내 자리가 아니다’라는 확신으로 바뀌게 됩니다.
정착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소속감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적 장벽입니다.

 

 

‘기대와 현실의 차이’가 만든 정서적 거리

농촌 정착을 꿈꾸는 청년 중 상당수는 '자립적인 삶', '자연과 함께하는 일상', '커뮤니티 중심의 따뜻한 마을'을 기대하고 귀촌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실제 농촌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매우 다릅니다.
고령화된 마을의 생활 방식은 느리면서도 고정되어 있고,
모든 정보는 구두로 전달되며, 행정적 절차보다는 ‘관습’이 우선하는 구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일상은 도시에서 자율성과 투명성을 익혀온 청년에게는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한 환경’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농산물 출하 방식 하나에도
‘왜 굳이 이렇게 해야 하냐’는 질문이 ‘그냥 원래 그렇게 해왔으니까’라는 답변으로 되돌아오는 상황들이 반복됩니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불만을 넘어,
청년이 자신을 '이질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심리적 장벽이 됩니다.
결국 물리적으로는 정착했지만, 정서적으로는 이주하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관계 단절, 소외감, 무력감을 겪고 이탈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동체의 배려 부족 vs 청년의 이해 부족

농촌 공동체가 청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청년과 지역 주민 사이의 상호 이해 부족도 정착 실패의 주요 원인입니다.
예를 들어, 고령 주민 입장에서는 "도와주려고 했는데 반응이 차갑다",
"함께 일하려고 했더니 자기 방식만 고집한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청년은 "일방적인 훈수", "사생활 간섭", "사적인 부탁" 등이 반복되면
이를 '관심'이 아닌 '통제'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러한 오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거리감은 점점 커져서 결국 '이방인'과 '기존 주민'이라는 고정된 프레임이 형성됩니다.
또한, 정착 청년이 마을을 변화시킬 ‘주체’가 아니라 ‘행정의 대상’처럼 취급되는 구조도 문제입니다.
청년이 지역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단순히 보조금 수혜자 혹은 외부 예산 사업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느낌을 받게 되면
지역에 대한 애정이나 책임감을 느끼기 어려워집니다.
결국 정착은 물리적인 공간의 문제 이전에, 관계의 문제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함께 살아가기’는 정책이 아니라 문화입니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청년이 농촌에 정착하는 일은
단순히 인구 한 명이 늘어나는 의미를 넘어, 공동체의 재구성이라는 본질적인 과제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착 정책은 주로 ‘하드웨어’에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주거, 농지, 창업 공간, 지원금 등 물리적인 조건이 충족되면 청년이 머물 것이라 가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누가 함께 살 것인가’, ‘어떤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갈 것인가’가 정착의 성패를 가릅니다.
따라서 이제는 문화적 기반을 다지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청년과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정기적인 소통 프로그램,
지역사회 안에서 청년이 주체가 되어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기획 구조,
기존 주민을 위한 ‘청년 이해 교육’, ‘세대 간 교류 훈련’과 같은
소프트웨어 중심의 접근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정착은 제도로 시작되지만, 관계로 유지되고, 문화로 완성됩니다.
지방소멸을 진짜로 막고 싶다면, 이제는 사람 사이의 거리부터 줄여야 합니다.

 

 

관계의 구조를 바꾼 성공 사례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농촌이 청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문화적 장벽’을 줄이기 위해 공동체 스스로 노력하며 성공 사례를 만들어낸 경우도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전북 장수군의 한 마을은 ‘청년이장제’를 도입해 귀촌 청년에게 마을 대표 역할을 맡기며,
기존 주민과 청년이 함께 마을 행사, 농산물 직거래, SNS 홍보 활동 등을 진행하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청년이 마을의 ‘손님’이 아니라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을 수 있게 했고,
그 결과 해당 마을은 최근 3년간 청년 정착률 7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충남 예산군은 ‘세대 통합 공동체 운영 매뉴얼’을 마을 단위로 배포하고,
신규 전입자와 기존 주민이 매월 1회 이상 대화·식사·공동작업을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이처럼 정착의 핵심은 공간이나 제도보다도 관계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문화적 갈등은 극복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구조화를 통해 완화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들 마을의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