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군은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전부터 조용히, 그러나 가장 빠르게 인구절벽의 현실을 겪어온 지역입니다.
한때 10만 명이 넘는 인구를 자랑하던 고흥군은 2025년 현재, 5만 명 선도 위협받고 있는 대표적인 초고령·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됩니다.
불과 10년 전인 2015년에도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중학교가 남아 있었고, 마을회관과 시장, 보건지소도 제 기능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급격한 고령화와 청년 유출이 맞물리며 인구절벽 현상이 본격화되었고, 이제는 생활 인프라 자체가 유지되지 않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단순히 인구 수가 줄었다는 문제를 넘어서, 어떤 구조로 인구가 사라지고 어떤 일상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리고 이 지역이 앞으로 어떤 위기에 놓이게 될지를 구체적으로 짚어보는 것이 이번 글의 핵심입니다.
2015년의 고흥 – 이미 시작된 경고, 그럼에도 남아 있던 구조
2015년 기준, 고흥군의 전체 인구는 약 6만 5천 명 수준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인구 감소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읍내에는 여전히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운영 중이었고, 전통시장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활기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농협, 하나로마트, 군청 민원실 등 공공기관도 정상 운영되며, 주민들은 "그래도 살 만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고흥군의 고령화율은 약 33% 수준으로, 전국 평균보다 높았지만 ‘심각한 수준’이라고까지는 보지 않았습니다.
귀촌하는 50~60대 은퇴 세대들도 간간이 들어왔고, 공기 좋고 바닷가 인접한 농어촌이라는 이미지 덕에 은퇴지로서의 가능성도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 이미 청년 인구가 급격히 빠져나가고 있었고, 이로 인해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반 토막 이상 줄어들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조용한 붕괴’가 시작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2025년의 고흥 – 소멸위험지수 0.2대, 사실상 한계 상태
2025년 현재, 고흥군은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소멸위험지수에서 전국 최하위권(0.25 전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상 지속적인 인구 재생산이 불가능한 상태로 분류되며, 행정·교육·복지 등 필수 기능 유지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초등학교는 여러 곳이 통폐합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입학생이 단 1명뿐인 학교도 존재합니다.
청년층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45%를 넘어섰습니다.
특히 읍·면 단위에서는 마트, 병원, 치과, 식당, 편의점 등 기본 생활 인프라가 연쇄적으로 문을 닫고 있으며,
의료 서비스의 경우, 응급 환자를 순천이나 광주로 이송하는 데만 1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아 생명 위협까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2025년의 고흥은 숫자보다 더 심각한 실질적 붕괴 상태에 가까우며,
이제는 단순한 인구 감소 문제가 아니라 ‘생활 지속 가능성의 한계’에 도달한 대표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인구만 사라진 게 아니다 – 마을이 사라진다
고흥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장 심각한 변화는 ‘인구’가 아니라 ‘공간’의 소멸입니다.
인구가 줄면서 마을이 해체되고, 빈집이 방치되고, 논밭이 관리되지 않고, 공동체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으로 고흥군 전체 주택 중 약 22%가 ‘공가(空家)’로 분류되었으며, 일부 마을은 실거주 세대가 3가구 미만인 곳도 존재합니다.
마을회관은 문이 닫힌 지 오래고, 버스는 하루 1회 운행되거나 아예 폐지된 노선도 있습니다.
심지어 마을 전체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진 곳이 태양광 전기 계량기일 뿐이라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이런 공간의 해체는 단지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연결망의 단절, 그리고 외부 이주자의 유입 가능성마저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결국 사람보다 먼저 마을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아무도 메우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면서 고흥군의 미래는 더더욱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지방 소멸 회복이 가능한가? 지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전남 고흥군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는 시각도 분명 존재합니다.
우선적으로는 청년층이 다시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주거·일자리·문화 인프라가 일부라도 복원된다면, 귀촌·귀농을 고려하는 도시 청년층에게 고흥은 여전히 매력적인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지역에 남아 있는 어르신들의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주민과 공존할 수 있는 공동체 모델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존의 귀농귀촌 지원금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실제 정착을 유도할 수 있는 커뮤니티 중심 플랫폼, 창업 인큐베이터, 디지털 농업 지원 등 실질적 전략이 필요합니다.
고흥은 지금 전국 지자체들이 마주하게 될 미래의 축소판입니다.
이 지역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다른 지역의 생존 가능성도 함께 결정될 수 있습니다.
지방소멸은 막연한 위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고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며, 이 현실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지역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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