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과 행정통합 논의 – 규모가 커지면 지역은 살아날까?
최근 지방소멸 대응 전략 중 하나로 ‘행정통합’, 즉 시·군·구 단위의 통합 논의가 전국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인구가 급격히 줄고, 행정 운영의 비효율성이 커지면서
‘규모를 키워야 살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행정통합은 행정구역을 물리적으로 합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예산 배분, 인프라 투자, 공공 서비스 구조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지역 주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중대 사안입니다.
예를 들어 대구·경북 통합, 창원·마산·진해 통합, 전주·완주 통합 등
이미 시행됐거나 추진 중인 통합 논의는 지방소멸의 위기 속에서
‘살 길’을 찾는 하나의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행정구역을 합친다고 해서 지방소멸이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행정통합 논의의 배경과 목적, 실제 사례, 효과와 한계 등을 살펴보며
지방소멸 대응 전략으로서의 행정통합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분석해보겠습니다.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 등장한 행정통합의 명분과 기대
행정통합은 주로 재정 절감, 행정 효율화, 인구 기준 상향을 목적으로 추진됩니다.
지방소멸 위험 지역은 대부분 인구 5만 명 이하의 군 단위 자치단체이며,
이들 지역은 중앙정부의 인프라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거나, 자체 예산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인근 시 또는 중견 도시와 통합해
행정 기능을 효율화하고, 재정 투입 단위를 확대함으로써 지방소멸을 방지하겠다는 전략이 제시됩니다.
예를 들어, 2010년 창원·마산·진해 통합은 전국 첫 대규모 행정통합 사례로,
행정비용 절감, 공공시설 통합 운영, 산업단지 연계 개발 등을 목표로 했습니다.
또한 전북 전주·완주 통합, 경북 대구·경산 통합 등도
중장기적으로 행정 일원화를 통해 도시경쟁력을 높이고, 젊은 인구를 유입시켜 지방소멸에 대응하겠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처럼 행정통합은 물리적 규모 확대를 통해 지역 기능을 유지하고, 행정체계를 효율적으로 재편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 통합의 부작용과 현장 혼란
행정통합이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에서는 여러 한계와 부작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역 간 불균형 문제입니다.
통합이 이루어질 경우, 행정 중심지는 대부분 기존 대도시나 시청소재지로 고정되며,
군 단위 지역은 사실상 행정 중심성·예산 배분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마산·진해 시민들 사이에서는
창원시 중심의 행정 운영이 불공정하다는 불만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며,
실제 일부 지역은 통합 이후에도 지방소멸 속도가 오히려 빨라졌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둘째는 주민 참여와 수용성 부족입니다.
행정통합은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주민들은 “우리 동네가 사라지는 느낌”, “결국 대도시에 종속되는 것”이라는
심리적 저항을 드러내며 통합 자체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셋째는 지리적 거리와 생활권 차이입니다.
같은 시로 통합되더라도 공공시설 접근성, 교통망 연결, 상권 분포 등
생활 기반이 다른 경우엔 오히려 불편이 증가하고,
결국 삶의 질이 하락하며 정주율이 더 낮아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행정통합이 지방소멸의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자체 결합이 아니라 정교한 기능 조정과 주민 수용성 확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행정통합 플러스’ 전략이 필요합니다
행정통합만으로는 지방소멸을 막기 어렵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단순 통합을 넘어선 ‘행정통합 플러스’ 전략,
즉 기능 중심의 통합과 통합 이후의 지역 균형 발전 대책을 함께 설계하는 접근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능 중심 통합’은
교육, 보건, 교통, 문화시설 등 주민 삶과 직결된 핵심 기능에 대해 통합 관리를 시도하고,
나머지 권한은 각 지역이 분산·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또한 통합 이후에는 기존 소외 지역에 인센티브형 인프라 투자,
예산 차등 지원, 맞춤형 인구 유입 정책을 병행해야 정서적·물리적 소외감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략을 기반으로 한 행정통합은
지방소멸을 단순히 ‘규모 키우기’로 풀기보다,
‘지역 간 협력과 기능 최적화’라는 구조로 진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보여줍니다.
궁극적으로는 행정통합이 수단일 뿐이며,
핵심은 그 이후 주민이 얼마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가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행정통합은 답이 될 수도, 또 다른 갈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 어떤 방식도 지역의 실제 삶을 고려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행정통합이 성공하려면
그것이 단지 수치상의 인구 확대나 예산 구조 재편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통합 이후에도 병원이 멀고, 학교는 폐교되고, 버스는 끊긴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그 지역을 떠나고, 지방소멸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행정통합은 규모를 키우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삶을 지키기 위한 설계가 되어야 하며,
통합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일한 해법이 아니라, 다양성과 지역성에 맞춘 조합형 해법입니다.
행정통합이 지방소멸의 진짜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단단한 분석, 충분한 대화, 지속적인 조정이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규모를 키운다고 지역이 살아나는 건 아닙니다.
그 안에 사람이 머물 수 있느냐, 관계가 지속되느냐, 공동체가 유지되느냐가 결국 핵심입니다.